어떤 연락 #01

글짓기 2009. 12. 17. 16:13

그러고 싶지 않은데, 의심이 피어오른다. 너는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업신 여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를 경계하기 시작한다. 소중함의 무게를 재고 속물적인 기준으로 너의 가치를 매긴다. 그러고 나면 상처받고 외로운 건 네가 아니라 내가 되어버린다. 나는 나를 지키고 싶었을 뿐인데 왜?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네가 괘씸하고 미워진다. 그리고 나는 더욱 외로워진다. 사방이 적으로 변하고 아무데도 갈 곳이 없는 나는 황폐해진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스스로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모르는 척 시간을 흘려보낸다. 모두가 그렇듯이 그저 별 일 없는 하루하루가 힘에 부쳐 나에게서 너에게서 그리고 모두에게서 그렇게 멀어져간다. 그건 네 탓이 아니듯 내 탓도 아니지 않느냐고 갈피없는 마음이 누구도 없는 곳으로 소리 없이 흩어진다. 그런 식으로 망각한 채 잊고 지내다보니 어느덧 몇년이란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그동안 내가 너를 떠올린 적이 없듯 너도 나를 떠올린 적이 없었음을 너의 오랜만의 연락으로 깨닫는다. 반가운 마음만큼 주인없는 서운함이 한차례 스쳐지나가고 난 후 네가 말했다.

곧 결혼해.

축하해 마땅할 일에 왜 어딘가가 바스라져버리는 기분이 드는 걸까. 반갑고 미안했던 그 연락이 분명한 목적이 있는 것이었음을 확인한 순간 당혹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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