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떠난 건 미안하게 생각해. 아주 나갈 생각은 아니었어. 잠깐 바람 좀 쐬다 돌아갈까 생각하기도 했어.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거짓말로 시작된 관계가 이어져 봤자 얼마나 이어지겠어. 남편은 돌아왔냐고? 아니, 그 사람은 완전히 떠났어. 그때 남편과는 이미 이혼 얘기가 오가고 있었거든.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 때문이었지. 어선을 타다 만난 외국 여자였어. 억장이 무너졌지......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나는 남편에게 완전히 의지하고 있었거든. 결혼을 하기 전에는 부모님께 의지했겠지. 그러니 땅과 하늘이 동시에 무너진 것 같았어. 여고생인 척 채팅을 한 건...... 나쁜 의도가 아니었어. 난 대화가 필요했을 뿐이야. 그런데 나를 온전히 드러내기는 두려웠어. 부모와 배우자를 동시에 잃고,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모호했으니까...... 아저씨와 함께 있어 행복했던 건 거짓말이 아니야. 하지만 아저씨와 함께 있었을 때도, 아저씨가 내게 의지한 만큼 나도 아저씨한테 의지했을 거야. 아저씨 집에서 나와 길을 돌아다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나는 매번 누군가에게 의지하면서 살기만 했던 건 아닐까."

 오는 말없이 듣고 있었다. 그의 앞에 놓인 오렌지주스 위로 녹은 얼음이 투명한 층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 나도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 그렇지만 그게 나와 닮아서는 아니야. 예전에 내가 나와 고양이가 닮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지? 그건 절대로 착각이었어. 나는 그저 제멋대로에 무언가를 책임지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었어. 나는 고양이에 한참 못 미치는 인간이 틀림없었어. 고양이를 돌보며 느낀 점은, 그 애들이 제멋대로로 보이는 게 생각이 없기 때문이 아니란 거야. 고양이들은 단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동물이었을 뿐이야. 고양이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헤쳐 나갈 힘이 있는 존재들이었어. 어떤 종류의 어떤 고양이라도 말이야. 나는 내가 고양이에게 끌렸던 이유를 알게 되었어. 그건 나보다 감정적으로 강한 누군가에게 끌리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거야. 난 그 동물을 더 깊이 알고 싶다고 생각했고 브리더가 되기로 결심했지. 그래서 내가 캐터리 코너에 있었던 거야. 그 캐터리에 유명한 브리더가 하나 있는데, 그 사람 견습생으로 들어가게 됐거든. 그 사람은 진짜 브리더야. 아비시니안을 전문으로 하지만 모든 고양이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기초해서 그 일을 하고 있으니까. 어쩌씬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브리더가 세상엔 많거든. 브리더인 척 속여 마구 번식시킨 고양이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많고...... 물론 난 아직 견습생이지만 언젠가는 유능한 브리더가 되고 싶어."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이수진, 269쪽~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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