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규칙

글읽기 2015. 7. 16. 00:13

 나는 컴퓨터를 강제로 종료시켰다.

 창밖에서는 아무도 없는 교차로를 빨간 신호등이 비추고 있었다.

 언제였던가, 다루미와 둘이서 빨간 신호등일 때 길을 건넜다.

 "너는 사막 한가운데에 신호등이 있어도 파란불이 켜질때까지 기다리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당당하게 신호를 무시하는 녀석을 내가 놀리자,

 "사막 한가운데에 신호등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일부러 그쪽으로 가서 건너는 인간도 있냐?"

하며 웃었다. 그러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차 한 대 지나다니지 않는 건널목에서 예의 바르게 신호가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할 필요는 없지만 빨간불일 때 건너는 데에는 두 가지 규칙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절대로 차한테 피해를 주지 않을 것. 당연한 소리겠지만 빨간불에서 건너는 게 버르싱 되면 깜빡하기 쉬우니까 규칙으로 정해두고 명심해야 돼. 신호등이 없는 장소에서 길을 건널 때 이상으로 차에 신경을 쓸 것. 멀리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아도 그쪽 처지에서는 파란불인데 전방에 사람이 건너가고 있으면 불쾌하겠지. 조심하느라고 속도를 떨어뜨렸기 때문에 원래 같으면 지나갈 수 있었던 신호에 걸릴지도 모르잖아."

 "또 하나는?"

 "아이들이 있을 때는 꼭 신호를 지켜야 한다는 것. 부모가 애써서 '빨간불에서는 서고 파란불에는 건너' 하고 가르쳐준게 다 허사가 되잖아."

 "그건 기만 아니야?"

 "기만이라기보다는 이중규칙이지. 아이들은 시야가 좁아.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어른만큼 넓은 범위를 보지 못하는 모양이야. 게다가 무언가에 정신을 빼앗기면 다른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임기응변할 수 있는 판단력도 아직 다 키우지 못했고. 그러니까 우선은 신호를 지키는 단순한 방법으로 교통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해야 돼. 괜찮아, 이중규칙이라도. 사실은 어른들이 스스로 판단한 다음 신호를 무시하고 있다는 걸 간파할 수 있게 되면, 그때는 그 애들이 신호를 무시해도 괜찮은 거야. 그런 졸업시험에 통과하게 될 때까지는 아이들을 잘 속이고 싶어."

 물론 이 규칙은 다루미가 멋대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다루미는 이런 식으로 어떤 일이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린다. 하지만 그 판단의 기저에는 언제나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

 신호가 파란 불로 바뀌었다.

- 가타부츠 중 '무언의 전화', 사와무라 린, 김소영, 277쪽~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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