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의 집

글읽기 2013. 3. 5. 00:05

 왜 시를 읽어야 하는가, 요약하면 한 가지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순결하게 닦아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답게 살라고 딱, 죽비를 내리치기 때문입니다.

 

성자의 집 -박규리

 

눈보라 속 혹한에 떠는 반달이가 안쓰러워

스님 목도리 목에 둘러주고 방에 들어와도

문풍지 웅웅 떠는 바람소리에 또 가슴이 아파

거적때기 씌운 작은 집 살며시 들춰보니

제가 기른 고양이 네 마리 다 들여놓고

저는 겨우 머리만 처박고 떨며 잔다

이 세상 외로운 목숨들은 넝마의 집마저 나누어 잠드는구나

오체투지 한껏 웅크린 꼬리 위로 하얀 눈이 이불처럼 소복하다

 

 무엇을 덧붙이겠습니까.

 추위에 떠는 개 반달이가 안쓰러워 목도리를 벗어 둘러주는 스님도, 어린 고양이들을 제 집에 먼저 들여놓고는 저는 겨우 머리만 처박은 채 눈을 맞고 있는 개도 과연 성자(聖者)라 할 만합니다. 이런 시를 만나는 순간 누구나 성자의 마음이 되어 가슴에 손을 얹게 되지요. 나는 누구와 무엇을 나눈 적이 있는가. 누구의 고통을 덜어 준 적이 있는가.

 시는 나와 세상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리하여 위로와 이해, 용서, 나눔의 마음을 일깨우며,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시에 담겨 있는 이런 마음을 시심(詩心)이라 합니다. 진정 시심으로 충만한 사람은 이기와 탐욕을 꿈꾸지 않지요. 겸손하고 부드러우며, 이웃과 세상에 손 내미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시 안 읽고도 여태껏 잘만 살았다."며 코 후비던 친구의 말은 빈말이기 쉽습니다.

 친구들도 그랬지만, 어릴 때는 누구나 천사의 마음, 즉 시심을 지니고 있어요. 푸른 하늘에 감동하고 죽은 벌레 때문에 눈물짓습니다. 할머니 주름살도 슬프고, 비 맞는 새를 보고도 가슴 아파합니다. 남을 속일 줄도 모르고요.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은 지식과 교양을 배우고 익혔음에도 갈수록 도덕적으로는 '타락'해 갑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속임수에 능란하고 아무 데나 침과 가래를 턱턱 뱉기도 하며, 말의 절반을 욕으로 채우고, 지하철에서 서 있는 할머니 앞에 앉아 조는 척도 잘하지요. 나 살자고 친구 따돌려 왕따 만들고, 때로는 방관하며, 싸움이 생기면 더 열심히 싸우라고 박수 치고 응원하며 핸드폰으로 찍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무섭고 살벌해졌나요? 시심을 잃어서 그렇습니다. 눈물이 왜 짠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거꾸로 생각해 봐!, 이상대, 104~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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