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이석원 | 1 ARTICLE FOUND

  1. 2012.11.16 우리 관계는 그것을 수용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2

 고민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친구지간이라는 것은 마치 연애하는 남녀 사이만큼이나 복잡 미묘했고, 관계 또한 수평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남녀 사이에도 더 좋아하는 사람과 덜 좋아하는 사람 간에 권력관계가 형성되듯이, (당연히 더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가 되고 덜 좋아하는 사람이 강자가 되겠죠) 친구끼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 날 나는 내가 가장 친하다고 여기고 있는 친구와 나와의 관계가 결코 대등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깊은 회의에 빠져들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수평적인 사이라면 나는 친구의 태도에 부당함을 느꼈을 때 정당히 어필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 관계는 그것을 수용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죠. 다시 말해 내가 친구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문제 제기를 했을 때, 혹여 그것이 나의 피해의식이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쪽에서 그것을 풀기 위해 노력할 의지가 있을 만큼 그쪽에게도 내가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인가를 따져보니 그다지 유쾌한 결론이 나지 않았던 겁니다. 판단컨데 친구는 나의 항의를 받아들일 의사가 없었고 관계는 그 즉시 깨어질 만큼 신뢰와 유대는 약했으며 그저 내 입장에서만 더 아쉽고 구차한 사이일 뿐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렇다 해도 관계를 쉽사리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만큼 여러 환경적, 상황적 이유들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를테면 그 친구가 내가 속해 있는 무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만약 그와의 관계를 포기했을 때 나의 위치는 덩달아 어떻게 위협받게 될 것이며, 그에 따라 나의 생활은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가하는 정치적인 고민 같은 것들 말입니다.

-보통의 존재, 이석원, 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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