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제 4편인 인간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아가위나무, 배나무, 귤나무 등은 열매가 익으면 잡아 뜯기고 수난을 당한다. 다름 아닌 자신의 능력 때문에 세상의 공격을 자초한 셈이다. 만물 중 그렇지 않은 것은 없다. 해서 상수리나무는 자신의 생을 보존하기 위해 오랫동안 쓸모없기를 바랐다. 몇 번이나 죽을 뻔 하다가 이제 겨우 쓸모없게 되어서 그것이 큰 쓸모가 되었다. 그렇다! 세상의 유용성을 따라가다 보면 타고난 기운과 재능을 부귀에 몽땅 빼앗겨 버린다. 그러니 생을 보존하려면 스스로 무용해져야한다. 이것이 장자의 무용지용이다.

장자: 쓸모없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쓸모 있는 것을 말할 수 있다네. 천하의 땅은 더할 나위 없이 넓고 크지만 실제 사람에게 쓸모 있는 것은 단지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정도의 땅뿐이지. 그렇다고 발을 딛는 부분만 잰 후 그 부분만 남겨 두고 나머지 땅을 바닥까지 깎아 버린다면, 그래도 발을 딛는 부분이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겠나?

혜시: 쓸모없겠지.

장자: 그러니 쓸모없는 것이 실은 쓸모있다는 게 확실해진 것 아니겠는가?


스펙은 내가 걷는 바닥을 빼고는 다 없애 버린 격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엄청난 학습을 통해 연봉과 자동차, 집 따위를 얻고 나면 발이 꼼짝없이 묶여 버린다. 그런 사람에게 세상은 자기가 서 있는 곳을 빼고는 다 허공이고 낭떠리지다. 유용성을 향해 달려가다 무용한 존재가 되어 버린 '호모 미세라빌리스'의 숙명!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148쪽,고미숙-